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佐渡島西三川砂金山(砂金採り)

억만장자가 되고 싶은 사람 모여라! 사도섬(佐渡島) 최고의 금산, 니시미가와 모래금산에서 사금 채취를 해보지 않겠습니까.

2019/08/25

 

니가타현 사도섬에는 <금의 새>라고 불리우는 사도금산이 유명하지만 실은 사도섬에는 확인된 것만으로도 약30의 금은산이 있습니다. 그속에서도 니시미가와(西三川) 모래금산, 니이보(新穂) 은산, 츠루시(鶴子) 은산, 아이카와(相川) 금은산 (통칭, 사도금산)이 주된 광산입니다.

사도섬의 가장 오랜 금산이 니시미가와 모래금산 입니다. 헤이안시대 후기(12세기경)의 “콘자쿠 모노가타리(今昔物語)”속에서 사금 채취를 하고 있었다는 설화가 있는 모래 금산 입니다. 16세기후반 사도를 지배한 에치고(越後)의 우에수기 카게카츠는 니시미가와 모래금산의 재개발을 하여 산출된 사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한테 봉납 되었습니다.

니시미가와 모래금산 주변에 있는 사사가와(笹川) 집락에서는 당시 한달에 한번 사금 18장(약 2.9kg)을 세금으로 상납하고 있었기때문에 “사사가와 쥬하치마이 무라(笹川十八枚村)”라고 불리웠습니다. (우에수기 카게카츠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상납한 사사가와 집락에서 산출된 사금은 전국에서 모아지는 금의 4분의 1이 되었다고 합니다.)

에도시대에 들어서도 사도금은산의 중요한 광산으로 자리를 잡아 사금 채취가 한창 계속 되었지만 18세기이후 차차로 산출양이 감소되어 메이지시대에 들어선 1872년에 폐산 되었습니다.

폐산후 사금 채취를 하고 있었던 사사가와 집락의 사람들은 생활 수단을 농업으로 바꿨지만 집락 주변에서는 사금을 채취한 산이나 수로 등이 잘 보존 되어있어서 에도시대의 그림들에 지금과 다름없는 풍경으로 남아있습니다. 2011년 “사도니시미가와의 모래금산 유래의 농산촌 경관”으로서 나라의 중요문화적경관에 뽑였습니다.

토라마루야마()는 니시미가와 모래금산 최대의 채굴지 였습니다. 사금을 채취 하기위해 파여 벗겨진 산표면이 보입니다.

니시미가와 모래금산에서는 사금을 채취 하기위하여 사금이 포함된 산을 파내여 여분의 돌이나 흙을 대량의 물로 썻어내여 남은 사금을 “유리이타(흔들 판)”으로 뽑는 “오오나가시(大流し)”라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 오오나가시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하여 주번에는 수많은 “금산강(金山江)”이라는 수로가 만들어져 현재도 총 12키로가 되는 수로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모래금산 폐산후 사금채굴장 흔적이나 츠츠미 흔적에 논밭을 개척하여 금산강은 농업용 수로로 전환 되었습니다.

사사가와 집락에는 오랜 사금채굴에 의해 생긴 경석을 써서 가옥의 기초나 부지의 경계선, 도로의 법면 등에 돌담이 세워저 있습니다. 주변 산속에서도 경석을 쌓은 단야소옥이나 작업소옥의 유구가 수많이 남아있습니다.

니시미가와 모래금산은 메이지시대에 들어서서 폐산이 되었지만 지금도 사금을 채취 할수 있기때문에, 사금 채굴권이 없으면 채취를 못하지만, 니시미가와 모래금산의 유적지에 있는 금의 테마파크에서는 실제 자연의 하천에 들어가서 옛날과 비슷한 채굴도구를 사용한 사금채취 체험을 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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どもど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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