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坂プレス トラベルマガジン

계정 만들기 로그인내
> 여행 매거진 > 니가타현 > 하늘과 바다가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이즈모자키(出雲崎)의 석양을 보러갑시다! 이즈모자키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出雲崎(夕日と夕凪の橋)

하늘과 바다가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이즈모자키(出雲崎)의 석양을 보러갑시다! 이즈모자키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2019/04/26

 

이즈모자키는 니가타현의 중앙의 위치합니다. 마츠오바쇼(松尾芭蕉)가 “오쿠노 호소미치(奥の細道)”에서 “아라우미야 사도니 요코타우 아마노가와 (荒海や 佐渡によこたふ 天の河, 하늘의 은하수를 배경으로 훤히 눈앞에 보이는 사도섬과 나와 그곳을 가로 막는 거센 일본해의 웅대한 자연을 표현한 시)”라고 사도섬(佐渡島)을 보면서 일본해의 거센 파도의 정경을 하이쿠 단형시로 읊은 것으로도 유명한 아름다운 구역입니다. 에도시대에는 토쿠가와(徳川)막부의 직할 영지(천영이라고 불리움)가 되어서 사도금산(佐渡金山)부터 반출되는 금은의 양륙지로서, 키타마에부네(北前船)의 기항지로서 번영 하였습니다. 또한 이즈모자키는 오래전 부터 석유가 발견 되었기 때문에 메이지시대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석유의 기계발굴에 성공한 “근대석유산업의 발상의 지”로서 크게 번영 하였습니다.

근년에는 일본해의 아름다운 석양의 뷰스폿으로서 아주 인기가 많고 이즈모자키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붉은 석양은 아주 환상적이며 바다에 천천히 가라앉는 저녁 해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기후 조건이 맞으면 석양이 수평선으로 가라앉기 전에 녹색 섬광이 한순간 빛나는 그린플래시를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해 석양라인(국도352호선) 길가에 정비된 해빈공원 부터 일본해에 걸친 길이 102m의 목제 다리 “유우나기(夕凪)의 다리”는 근년 애인들의 다리라고 불리워 “다리 난간에 쇠를 묶어서 열쇠를 잠그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화제가 되어있습니다.

료오칸기념관(良寛記念館)이 있는 고대에서 내려다보면 이즈모자키의 거리풍경이 잘 보입니다. 이즈모자키의 집은 “츠마이리(처의 문)”이라고 불리우는 내림이 좁고 안 길이가 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내림의 폭에 따라 세금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안 길이가 긴 집을 지었었습니다. 에도시대 이즈모자키는 에치고(니이가타의 구명)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었기 때문에 “츠마이리의 거리 풍경”이 약4Km나 계속 됩니다. 이 거리 풍경은 일본에서 가장 깁니다.

일본해 석양라인(국도 352호선) 길가에 미치노에키 “에치고 이즈모자키 텐료오노 사토(天領の里)”가 있습니다. 미치노에키 속에 있는 “텐료오 이즈모자키 시대관”은 400년의 시간을 넘어 에도시대에 타임슬립 할수 있는 시설입니다.

이즈모자키는 에도막부의 직할지(천영)었습니다. 사도섬 부터 운반되는 금은의 양육지 및 키타마에부네의 기항지로서 번영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금산의 금은을 에도 까지 나르는데 중요한 키타구니 가도의 역참 마을로서도 성해지고 에치고에서는 처음으로 대관소(代官所)가 설치 되었습니다. 회선도매상가, 여관가 등이 늘어서서 다양한 업종들이 모였습니다. 당시의 성황은 에치고 넘버원의 인구밀도를 자랑하였고 좀 높은 산과 약10Km의 해안 사이에 끼워진 좁은 곳에 2만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시대관내에는 대관소, 봉행선, 에도시대의 상가와 거리 풍경, 장인의 생활 등이 재현 되어 있어서 천령으로서 흥성거린 이즈모자키를 체험 할수 있습니다. 또한 여행의 추억으로 시대의상을 입고 기념촬영을 할수 있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에츠노 쿠니(니이가타의 고명) 부터 불타는 물과 불타는 따이 헌상 되었다”고 씌어져있지만 이트모자키 비롯한 니이가타 각지에서는 오래전 부터 석유가 채유 되었습니다.

에도시대 말경 일본에 서양문화가 들어오면서 석유의 수요가 급증하여 이즈모자키에서도 석유개발이 활발해져서 1891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기계를 사용한 석유채굴에 성공 하였습니다.

또한 세계에서 처음으로 해저유전을 굴착하여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유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전후 부터 채굴량이 격감하여 1985년에 석유채굴이 종료되었습니다.

그 이후 유전의 철거지에 기념공원을 정비하여 석유굴착에 관련된 모뉴먼트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천연가스가 자연 분출하고 있기 때문에 공원내는 “화기금지” 입니다.

이 공원의 국도를 사이에 둔 반대편에 미치노에키 “에치고 이즈모자키 텐료오노 사토”가 있습니다. 미치노에키에는 “텐료오 이즈모자키 시대관”에 병설된 “석유기념관”이 있어 석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즐길수 있습니다.

1689년7월4일, 마츠오바쇼는 이즈모자키에 들르고 “아라우미야 사도니 요코타우 아마노가와”라는 하이쿠 단형시를 남기고 있습니다. “오쿠노 호소미치” 300년을 기념하여 정비된 “바쇼엔(芭蕉園)”에는 바쇼 진필의 “은하의 서”를 새긴 구비와 바쇼의 상이 세워졌습니다. 덧붙여서 거리를 사이에 두고 “바쇼엔”의 반대 편에는 마츠오 바쇼가 숙박한 여인숙 “오자키야”가 있었습니다.

료오칸(良寛)씨라고 하면 어린이들과 함께 숨박꼭질이나 공치기로 노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료오칸씨는 이즈모자키 출신의 시인, 사인, 서가로서 알려진 에도시대 후기의 선승 입니다. 료오칸씨 생가 철거지에 세워진 “료오칸도오”와 그의 유묵과 유품 등이 수많이 전시 되어 있는 “료오칸 기념관”을 비롯해서 이즈모자키에는 그리고 그와 관련 깊은 절이나 명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료오칸 기념관 옆에는 “료오칸토 유우히노 오카(석양의 고개) 공원”이 있습니다. 눈앞에는 일본해에 뜨는 사도섬, 오른편에는 야히코산(弥彦山), 내려다 보면 료오칸도오와 츠마이리의 거리 풍경. “료오칸토 유우히노 오카 공원”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니이가타 제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기사를 쓴 사람

どもども

기사에 코멘트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ページのトップへ戻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