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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현 세키가하라쵸의 관광 명소
세키가하라(関ヶ原)는 672년과 1600년에 두 번의 ‘천하를 둔 결전’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기후현 세키가하라쵸(関ケ原町)는 두 번의 ‘천하를 둔 결전’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그 전투 중 하나는 ‘다이카개신(大化の改新)’으로 알려진 정치개혁을 단행한 덴치천황의 동생 ‘오아마노황자(大海人皇子)’와 덴치천황의 아들 ‘오토모황자(大友皇子)’가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격전이 벌어졌던 672년 ‘임신의 난(壬申の乱)’입니다. 또 하나는 이시다 미츠나리가(石田三成) 이끄는 서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이끄는 동군에 의해 벌어진 전국시대 최대라고 하는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입니다. 세키가하라는 ‘동일본’과 ‘서일본’의 경계선 세키가하라의 ‘세키’란 관소를 의미하며 임신의난에서 승리한 오아마노황자(텐무 천황)가 도읍을 지키기 위해 673년에 ‘불파의 길'(토잔도(東山道), 후의 나카센도(中山道))에 설치한 ‘후와노세키(不破関)’를 말합니다. 후와노세키(터)는 후와노세키 자료관에서 나카센도를 사이에 둔 곳에 있습니다. 후와노세키는 도카이도의 스즈카세키(鈴鹿関, 미에현), 호쿠리쿠도의 아라치노세키(愛発関, 후쿠이현)와 함께 고대 산겐(三関) 중 하나입니다만, 교통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789년에 산겐 모두 폐지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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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전투] 세키가하라에 참전한 무장들의 에피소드를 정리해봤다!
기후현 세키가하라초는 1600년 9월 15일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총대장으로 하는 동군과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를 중심으로 한 서군이 천하를 건 ‘결전’의 땅입니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개전으로부터 6시간 만에 결판이 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이 대승을 거두었고 그 결과 도요토미 가문은 65만 석의 다이묘로 전락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도쿠가와 막부)이 확립되었습니다. 세키가하라초에는 세키가하라 전투에 관련된 역사 명소와 관광 명소 등 볼거리가 많이 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포진도 세키가하라 전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 천하를 노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력(동군)과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내세운 이시다 미츠나리 등의 반 도쿠가와 세력(서군)에 의해 발발한 파벌 싸움입니다. 서군은 총 9만 명, 동군은 총 8만 명이 세키가하라에 진을 치고 양군 모두 6000명에서 8000명의 전사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사적 세키가하라 옛전장 결전지 세키가하라전투 […]